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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는 것

작은 방 주인 2009. 10. 26. 18:35
아들이 집에 오자마자 학교 앞에 가서 병아리를 사도 되는지 물었다.
절대 안된다며 거절하니 병아리를 산 친구 집에 가서 구경하고 온다며 나갔다.

아들이 나간 후에 생각을 해 본다. 그동안 아들이 키우고 싶다고 해서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유충들, 사마귀, 햄스터를 키웠는데 유독 병아리는 안된다고 한 이유는 뭘까?

우선 첫번째로, 내가 새를 싫어하기 때문일 거다. 물고기 종류도 싫어하는 것처럼.
새나 물고기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내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새나 물고기나 길들이기 어렵고 어디 아프면 어떻게 해 볼 새도 없이 죽어버린다.
가뜩이나 햄스터의 나날이 커가는 혹을 보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는 터라 더욱 거부반응을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두번째로, 병아리는 햄스터처럼 우리에서 잠깐 꺼내어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나 고양이처럼 하루 종일 풀어놓을 수도 없다.게다가 내 경험에 의하면 그녀석들은 너무나 귀엽고 연약해 보이지만  배변훈련이 안된 개들만큼이나 추가의 가사노동을 요구한다. 더욱이 닭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꽤나 시끄러워진다.

세번째로, 내가 키웠던 병아리는 닭이 되고 나서 어디론가 보낼 수 있었다. 연고가 있는 시골이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시골로 가봤자 수탉이 제대로 대접받았을까 싶지만) 그 후야 어떻게 되든 보낼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곳이 없다.

나도 어렸을 때 병아리를 키웠고 "키우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겠지만... 점점 책임질 수 없는 것들이 불편해진다.

잘 모르겠다. 폐기처분될 지도 모르는 수평아리 몇 마리를 구제하는 셈 치고 가져오라고 해야 하는 건지, 살아있는 것들을 장난감 취급하는 이 세상에 분통을 터뜨려야 하는 건지, 내 집안에만 안들여오면 되니 그저 "엄마는 싫어" 를 되뇌어야 하는 건지.

수면부족에 할 일 쌓아놓고 *줄이 타는 상황에서 병아리 문제로 이렇게 여러 줄의 글을 쓰는 건 지금 너무 감정적인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