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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정리

작은 방 주인 2010. 3. 15. 07:40
주로 지원금 가지고 사업을 하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한가하다. 이러다가 12월~1월에는 미친듯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겠지(아휴~~).
스마트폰의 Task 목록에는 2줄만 들어 있고(청소와 빨래 - 이건 매주 반복되는 일정이다), 향후 3일간 일정을 알려주는 목록에는 1-2줄만 들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온 아르바이트를 눈 꼭 감고 거절하고 보니 이렇게 한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벌써 몇 주 전에 칼을 뽑아들었던 집안 정리를 이어서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집에 이사온지 벌써 만 7년이 되었는데, 이사오면서 창고에 물건들을 넣어 놓고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특히 손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는 말이다.

아들이 독후감을 쓰며 투덜거리는 사이 하나 둘씩 꺼내던 게, 몽땅 다 꺼내어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저 깊숙한 곳에서 옛날 성적표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성적표에는 그저 성적만 나타나 있을 뿐 나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주는 바가 없다. 성적표와 같이 들어 있는 노트를 보니, 중학교때부터는 성적표와 같이 들어있던 노트에 매월 평가결과 및 특정 과목들의 성적 그래프 및 석차 그래프를 그렸 놓았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전교석차를 목록으로 만들어서 나눠주곤 했는데, 그것까지 꼼꼼히 붙여놓은 걸 보니, 나도 꽤 경쟁에 신경쓰는 학생이었던 듯 하다.

창고에는 대학교때 작성한 보고서들이며 각종 노트필기까지 있었는데, 지금보다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요즘은 강의를 들으러 가도 노트필기도 잘 안하니까. 보고서들에서는 한결같이 논리의 비약이 보이는 걸 보니 한숨이 나온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나의 언어로 쓰려고 노력한다는 것만 다르다.

어떻든, 이 모든 것들을 이번에는 정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라기 보다는 이제 더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조그만 것에 연연하는 사람은 의미를 잃어버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