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7

이제는 끄적거리기도 한다. 본문

아이가 자란다

이제는 끄적거리기도 한다.

작은 방 주인 2009. 6. 17. 09:21
아들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생겼다.

아들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같은 방과후교실을 다니는 남매와 친하게 지냈다. 방과후교실이 끝나면 집에는 가방만 내려놓고 2학년 형과 1학년 동갑 여자친구와 놀러나간다며 뛰어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더니 한 2-3주일전부터 일찍 집에 들어오거나 놀이터에 나가도 빙빙~~ 돌기만 할 뿐 노는 것 같지 않았다.
왜 요즘은 놀이터에서 그 남매와 안노느냐고 물었더니 형이 자기랑 안논다고 말했단다. 아마 남매 중 형과 다툰 모양이었다.
아들은 다소 소심한 성격에 폭넓게 아이들과 노는 것 보다는 몇 명과만 친하게 지내는 경향이 있어서 아파트단지의 다른 아이들하고는 그닥 친하게 지내지 못하기도 했고, 6시 이후부터 놀기 시작하는 아들은 그네들과는 노는 시간이 달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졸지에 홀로 된 아들은 그래도 집에서 장기며 바둑이며 두며 놀아보았지만 (가뜩이나 심통나 있는) 엄마 아빠가  친구들의 공백을 채워줄리 만무했다.

그제, 식탁에 앉아서 밥먹기를 기다리면서 아들이 수첩에 뭔가 끄적거리는 걸 봤다.
나중에 보니 이런 내용이다.

여동생과 놀고 싶은데 형 때문에 못노는 듯 하다.  이 여동생한테는 이것저것 과자도 사주고 인라인스케이트도 빌려가라고 가져다 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감정이 있는 듯 했는데, 형 때문에 못놀게 되었으니 상심도 되고 화도 날 것이다. 그러니 형은 바보지.


그렇지만 그걸로 풀이 죽어 끝나는건 아니다. 어쨋든 집에 들어왔으니... 다른 걸로 놀아야지.
바둑도 두고 싶고 배도 고프고..

속에 담아두지 않고 뭐든지 뱉어내던 아이가 이제는 혼자 끄적거리기도 하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그만큼 엄마에게선 한 발자국 멀어지는 셈이고 스스로 감당하는 생활의 영역은 조금 더 넓어졌을 것이다.

친구에게 가져다주라고 스티커들하고 꽃무늬 색종이들을 좀 챙겨놓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앞으로 이런 일들이 수없이 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