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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도 필요하다는 것

작은 방 주인 2011. 4. 12. 10:15
아이의 학교 선생님은 추측컨대 성실하고 학생다운, 즉 숙제 열심히 하고 준비물 잘 챙기고 선생님 말씀 잘 따르는 아이를 강조하시는 것 같다.
아들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있는데다가(이건 엄마가 잘 못챙겨주기 때문일텐데) 요즘은 선생님 말씀을 잔소리라고 말하며 듣기 싫어한다.

아이의 불만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책은 어차피 읽는 것인데 굳이 독서록을 써야 하는가, 일기를 꼭 일기장에 써야 하는가, 매일 수학문제집 3쪽을 풀어야 하는가...
엄마로서의 한 부분은 '선생님이 내준 숙제이니 꼭 해야지, 2학년때 아무 것도 안시켰더니 선생님이 싫어하시더라' 이런 생각이지만 나로서의 부분은 '나도 귀찮은데 너는 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학교에서 요구하는게 이런 규칙이고 자잘한 성실함이라는 형식일지도 모른다는 것. 시험성적이 잘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매일의 생활에서 선생님이 요구하면 학생은 그것에 맞춰 행동해 보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거다. 성실함이라는 형식을 입지 않으면 선생님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친절함이라는 형식을 입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거다.

요즘 아들이 잘때 읽어주는 책은 "매일매일 발명 트레이닝"인데 이 책에 발명을 위해 꼭 필요한 세가지로 과학, 기술, 그리고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내용물이라면 디자인은 그 내용물들을 아우르고 제대로 내용물들을 사용할 수 있게/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껍데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디자인이 입혀지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껍데기가 아니라 내용물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여자라는 형식을 입게 되는 순간 변기의 파리 그림 맞추기는 불가능해지니까.

결국 아들과의 이야기는 발명트레이닝과 숙제를 돌아 형식의 중요성까지 오게 되었다. 아이는 알겠다고는 하였으나 결국 독서록과 일기 숙제는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늦게까지 말을 시킨 엄마 탓이다.